내적치유/내적치유

[스크랩] 닐 엔더슨 목사 3단계

davidtheking 2012. 10. 19. 10:18

제3 단계 비통함과 용서

(STEP 3 BTTERNESS VS. FORGIVENESS)

 

우리가 사탄에게 이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남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고후 2:10,1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우리도 자비를 베플어야 하며(죽6:36)

우리가 용서 받은 것 같이 우리도 또한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엡 4:31,32)

 

주계서는 어떻게 우리를 용납하셨읍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남녀노소, 빈부귀천, 무식유식, 흑인 백인 차별, 편견 없이 용납하십니다

 

큰 목소리로 다음의 기도를 낭독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당신이 필히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떠오르게 하도록 간구하십시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나 자신을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롬 2:4)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허물이 있는 자들에게 한가지로 참음과 자비를 베풀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속에 비통과 원망을 채워 왔음을 고백합니다.

 

지금 나 스스로를 살피는 시간 동안에 아버지께서 나를  도우사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나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사 그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마 18:35) 도와주시기 빕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하옵니다. 아멘

 

용서는 망각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괴로운 경험들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치 않겠다고( 히 10:17) 말씀하셨지만

전지 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물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 이상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를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시 103:12) 의미 합니다.

 

잊어버림은 용서의 결과가 될 수는 있지만

잊은 그 자체가 결코 용서의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어떤 사람들을 대면하여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들추어 낼 때에

바로 우리는 그들을 아직도 용서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선택이며 의지의 걸림길 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서로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용서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명령하시지 않기 때문임).

그러나 용서가 어려운 것은 용서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정의의 개념과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고통 받았던 남들의 잘못에 대해 복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 (롬 12:19)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내게 그 사람을 그냥 놓아주어야만 합니까?

라고 말하는 데 바로 그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과거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놓아 줄 때 그들이 결코 심판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고

고통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라고 말할 지 모릅니다만 보십시오,

그들이 또는 그 일들이 아직도 당신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고통을 어떻게 중단시키겠읍니까?

당신이 어떤 사람을 용서할 때에는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 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당신 스스로가 자유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 사람을 용서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당신과 그 사람간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은 바로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인 것입니다.

 

용서는 바로 다른 한사람의 죄의 결과를 내가 용납하고 살아가겠다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어렵고 댓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용서하고자 하는 그 악행의 대가를 당신이 치르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우리가 싫던 좋던간에

그 악행의 결과를 우리가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용서치 못하므로 비통가운데 살아 갈 것이냐,

용서해 줌으로서 자유함속에 살아 갈것이냐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의 대가를 당신 몸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여러가지 형태의 용서가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용서는 대속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남의 죄의 결과(댓가)를  대신 짊어짐이 없이

참다운 용서를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인(고후 5:21)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어디 있읍니까?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확립시킨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롬 6:10)

 

그러면 어떻게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격는 고통과 증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남을 용서한다면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의 뿌리까지 취급하지 않을때그 용서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인관계시의 과오나 허물로 인한 괴로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처리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고통을 하나님께서 표면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때에 야만 비로소 나음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들의 잘못이나 허물을 그들에게 불리하게 이용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 모든 과오의 짐을 당신이 대신 짊어지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요.

 

그들의 죄를 묵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하여는 정면으로 도전해야 됩니다.

또 마음속에 그 사람을 용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때까지 기다려서도 안됩니다.

결코 그 때가 안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쓰라린 감정이 회복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당신이 용서 하겠다는 결심을 한순간

사탄은 이미 틈을 탈 곳을 잃어버린 것입니다(엡 426,27)

이 단계를 통하여 얻는 것은 자유 함이며 감정이 아닙니다.

 

용서하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르면서 "주님, 나는 ------- -------- -------을 용서합니다"하고

기도 하십시요 (그의 잘못과 그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세하게 밝힘)

 

"주여 내가 --------를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이미 주님은 당신이 용서하도록 결심하는데 도와 주셨습니다.

 

또 "주여 -------- 를 용서해 주기를 원합니다"  라고도 기도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서 용서하고자 선택하는 가장 핵심적인 당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해 낼 수 있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다 처리했다고 확신 할 때까지

그 사람과 대면한 후에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십시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의 과오나 경험을 불러 일으킬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성령의 움직임에 따르십시오.

이단계가 바로 당신 자신의 자유함을 위하여 시도하고 있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참 자유함을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과오자나 죄를 진 사람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하지 마십시오.

용서는 당신의 정서적 고통을 해방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변명이나 구실을 찾아내고자 하는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긍정적인 감정이 뒤따라 올 것입니다.

과거의 일로부터 당신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출처 : 아이러브 예수님 (효소 해독 다이어트)
글쓴이 : 지동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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