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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적 아이 (7) -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davidtheking 2010. 1. 8. 16:59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 바울은 진정한 성숙에 이르는 길은 어린아이의 이해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결혼에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같이 구혼을 하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 이해심, 교통함으로 결혼을 하고 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이 환상은 침대에 들기 전에 어머니나 아버지의 무릎위에서 듣던 것처럼 멋진 왕자가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한다는 동화에서 시작한다. 십대 청소년기에는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이 환상은 계속된다. 대중 전달매체들은 가장 혐오스럽고 사탄적인 요소로 우리를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개념으로 채우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데이트를 시작하고 성인기에 들어서까지도 어린아이같이 생각하고 이해하고 있다.

- 사랑과 결혼 분야에서 심리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어린아이의 일’이라 부른 그것을 ‘로맨틱한 발육 부진’이라 부른다. 환상으로 가득 차있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서의 로맨틱한 발육 부진과 성경에서 얘기하는 사랑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를 사랑하심을 비유할 만큼 깊고 강하고 헌신적이고 오래 참는 것이다. 이것이 비슷한 사랑(reel love)참 사랑(real love)의 차이이다.


♣ 에로스

-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결혼에서 감정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성적 사랑, 에로스, 육체적 매력,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아이디어이고 그분의 계획이다. 그분은 그것이 성숙한 결혼의 한 핵심적인 요소가 되기를 원하신다. 만일 에로스적 사랑이 당신의 결혼 개념에 들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결혼에 부적당한 사람이다. 평생 동안 나를 한 번도 매혹시키지 못할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처럼 끔직한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에로스와 성에 대하여 많은 얘기를 하면서도 즐기고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성적 불능과 연관된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가사에 있듯이 우리는 현실을 환상으로, 살아있는 아가씨를 종이인형으로 대체시켰기 때문이다.

- 플레이보이 잡지 안에 끼어 있는 포스터는 결혼 상대자가 당신 앞에 나타났을 때 당신이 멋진 애인이 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환상이 실제의 대체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플레이맨(Playman)'이라 부르지 않고 ’플레이보이(Playboy)'라고 부르고 있음을 유의하라.

- 에로스 - 이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중 거룩한 일부분이다. 필수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에로스, 욕망에만 기초하는 사랑은 불안정하다. 두 사람이 항상 상대에게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냉담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외적인 조건이 변화되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사랑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에로스는 내적인 아름다움에 의해 증가되어져야 한다.

- ‘사랑에 빠짐’ 이란 그리스도인들의 결혼에 있어 유치한 기초이다.

- 나의 사랑이 내 주관적인 감각의 열정에 의해 측정될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단지 내 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감각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것으로서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가 과연 자신의 감각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가? 자기 자신과? 물론 그것은 갓난아기이다. 오늘날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그냥 로맨틱한 발육 부진에 걸려 있다. 그리고 에로스에 과대한 중점을 두어 균형이 깨진 이 발육부진증은 어른 옷을 입고 진지한 어른 드라마 안에서 아이들의 동화를 꾸미고자 할리우드 촬영장을 누비는 아이의 자기 사랑에 불과하다.


♣ 필리아

- 성경엔 사랑의 두 번째 용어를 얘기한다. - 필리아는 같은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같이 나누며 같은 목적을 향해 같이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강하게 발전시키는 사랑으로, 우정으로서의 사랑이다.

- 성경은 신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마라.”(고후 6장14절)는 말씀으로 경고하고 있는데, 이는 필리아 또는 우정의 성격과 그 연합에서의 예측된 이익과 관심의 기본적 연합 때문에 있는 말씀이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암3장3절). 할 수 없다. 두 사람 사이에 가장 진지하고 친근하며 굳은 관계 안에서의 사랑 없이는 오랫동안 같이 살수도 없다. 그래서 필리아의 최소 요구조건은 당신과 데이트하고 구혼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상대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이 하나 됨이 없이는 성공적인 결혼의 가능성은 없다.

-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두 사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므로 좋은 결혼생활을 저절로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결혼하지 말아야 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필리아는 영적인 연합 외에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혼의 굴레 안에서 결합을 더 굳건히 하는 많은 중요한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 우리의 사랑과 결혼에 이 필수적인 요소를 간과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이다. 한 유치한 개념, 악마의 기만의 한 모습으로서 매스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것이 있다. “난 그와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어. 그는 정말 좋은 내 친구야.” 또는 “난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 없어. 그녀는 내 좋은 친구야.” 당신은 이런 쓰레기 같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당신들이 좋은 친구라는 것 이상 더 좋은 결혼의 바탕이 있을까? 뒤집어 생각해서, 당신의 삶을 같이 살 그 누군가가 좋은 친구라 아니라고 생각해보라? 구혼할 때 이것을 물어보라. “만일 우리 사이에 아무 성적 표출이 없다 하더라도, 우린 평생 좋은 우정을 간직하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일까?”라고 물론 이것은 상당히 힘든 질문이지만 중요한 것이다.


♣ 아가페

-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우리의 결혼 상대방에 대한 모든 자격 요건을 마음에 새긴다.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사람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꿈꾸어오던 그 이상형과 반대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세 번째 성경적 사랑으로, 성숙한 결혼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랑인 아가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대목이다.

- 아가페는 하나님께로만 오는 사랑이며 모든 특성이 하나님을 닮은 것에 있는 사랑이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사랑이며 자기희생의 사랑이다. 아가페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바탕을 둔다. 심지어 이것은 필리아나 에로스와도 공통점을 갖지 않으며 의지의 복종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랑이란 말인가? 알고 싶다면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보라. 이것은 그 사람을 위한 행동양식이며, 돌봄과 보호를 위한 사랑과 그에 대한 모든 복지에 책임을 지기 위한 헌신이다. 이것은 성약(聖約)에의 헌신이며 환경과 기분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된다.


♣ 성인을 위한 결혼

- 성숙한 결혼은 “에로스 - 욕망, 성적인 끌림, 필리아 - 순수한 우정, 관심과 목적의 연대, 아가페 - 마음 깊은 성약적인 헌신”이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 결혼은 이 셋의 매우 값지고 불안정한 균형이다. 낭만과 에로스는 결혼을 시작함에 큰 도움을 준다. 이것은 우주선을 궤도에 올려놓고 떨어져나가는 로켓과 같다. 그 우주선이 목적지를 향해 계속 성공적인 항해를 하려면 다른 형태의 힘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결혼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치하게 균형을 이룬 사랑에 대한 개념을 버려야 한다.

-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렇다 결혼은 어른이 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졌다.”라기보다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사랑으로 올라간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 대화

- 결혼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의견 교환이다. 사도 바울은 얘기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어린아이 수준에서 의견을 교환했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성숙한 수준에서 교통하고 있다.” 다행히도 사도 바울은 성숙한 교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 하여 범사에 그에게 자랄지라.”(엡 4장14-15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확한 표현인가. 사도 바울은 그의 교통의 법칙에서 우리보다 2,000년이나 앞서 있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대화이다.

- 결혼이 불행하게 되는 최대의 이유는 배우자가 상대방과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사랑스럽게 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많이 결혼에서의 대화는 어린아이의 수준에 남아 있는 것이다.

-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교통하는가? 어떤 아이들은 사실을 말하되, 잔인하고 직선적이며 상처받게 말한다. “막대기와 돌멩이는 뼈를 상하게 하지만 욕설은 나를 상하게 하지 못한다.”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욕설은 뼈까지도 심하게 상하게 한다. 아이들은 어떤 땐 매우 잔인해서 솔직하게는 말하지만 사랑으로 하지는 않는다.

- 그리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말하기를 너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진실을 말한 때가 있었을 것이지만 계속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는 어쩌면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진실의 참 표현을 듣거나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사랑받는 아이들이었겠지만 진실은 말할 수 없었다.

- 비밀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이다. 그것은 튼튼하고 성숙한 기독교적인 결혼을 이루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말하는 법은 습득된 기술이다. 그러나 나는 습득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선 가정과 삶에서 경험한 것, 또 우리의 이 더러운 문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내버려야 한다. 어떨 때는 분노 속에서 어떨 때는 눈물과 땀과 또 약간의 피 속에서 그것들을 내어버리며 우리의 옛 방법을 바꾸어가야 한다.

- 부부들이 상대방에게 느낀 진실을 표현도 하지 않은 채 서로 사랑하고 같이 살며 성관계를 가지고 아이를 갖는 것이 희한하고 놀랍지 않은가? 또한 우리 목사들은 결혼 안에서 표현된 갈등은 죄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치면서 그 고통에 공헌해왔다. 이 사실이 고려되지 못한 까닭은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그럭저럭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다라고 터놓고 말하지 못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그들의 불만과 찬성하지 못함과 분노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배워왔던 어린아이 같은 환상을 버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반대를 극복하는 성숙한 수단으로서의 건설적 갈등 같은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인내하는 것이 좋은 신앙인의 도리라 생각해서 침묵함으로 갈등을 유치하게 또 위험하게 대처한다. 그들은 어떠한 반대이든 간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내게 상담해오는 부부들에게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싸우는 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순종’이라는 것으로 많은 것들을 지나쳐버린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함의 부족에서 올 수 있다.

- 깁슨 윈터는 “충돌이란 친근한 사람 사이에서 항상 오는 대가이며 그것은 알맞은 대화로 풀어질 수 있다.”라고 얘기해준다. 나쁜 대화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데서 오든가, 사랑으로 말하지 않음에서 온다. 이것은 당신을 서서히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차게 만들다가 어느 한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며 분출된다. 아니면 당신의 진정한 느낌을 가장하여 다른 면으로 상처는 나타난다.

- “내가 장성하여서는 대화의 유치한 방법을 버리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웠다.”라고 사도 바울은 얘기한다. 이것은 마주보기와, 궁극적으로 창조적이며 도움을 끼칠 갈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갈등을 해소하게 하고 당신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들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지를 이해 받는 것이다.


♣ 당신의 감정을 표현하라

- 아름다운 결혼 아에서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헌신과 노력의 결과다. 결혼에 대한 가장 유치하고 미성숙한 오해는 바로 이것이다. - 사랑은 자기 유지적이며, 아름다운 결혼은 그리스도께 헌신된 두 신실한 사람이 맺어지면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비성경적인 인식을 버린다면 당신은 성장해 갈 것이다. 결혼은 힘든 노력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이 하려는 것은 지금부터 영원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에 당신은 그것이 할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연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혼이란 내가 알고 있는 한 ‘천국을 위한 최고의 준비’이다.


출처 : 회복중에 있는 사람들
글쓴이 : 白松(이철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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