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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4과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1)

davidtheking 2009. 10. 27. 17:27

14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요즈음 미국과 북한은 서로 으르렁거린다. 그러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불안해 한다. 서로 전쟁을 하면 그 불똥이 주변으로 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외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우리 내부에서 내 뜻을 행하려는 옛 사람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새 사람이 서로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으르렁거린다.

이 싸움은 어느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까지 치러야 한다. 이 때문에 성경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2 이하)라고 기록한다.

 

왜, 이런 갈등과 충돌이 생기는가? 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에 차이가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왜 차이가 있는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이유는 우리는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보다 나의 죄악 된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 좋고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린 자녀를 기를 때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어린 자녀가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만 먹게 하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TV나 게임을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자녀의 기를 키워준다고 해서 잘못해도 야단치지 않고 훈육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만 먹은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려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할 것이고, TV나 보고 게임만 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아이는 성장하여 정상적 사회인이 되지 못할 것이고, 기를 키워 준다고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자녀는 자기만 알고 버릇이 없어서 대인 관계를 잘 하지 못하여 왕따만 당할 것이다.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것이 결국은 자녀를 망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죄악 된 생각, 감정, 의지와 소원 대로 하도록 허용하신다면 나중에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매일 성장해 가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성숙

 

신자와 비신자 더 나아가서 신앙 성숙과 관련된 단어들은, 옛 사람과 새 사람, 겉 사람과 속 사람,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다. 이 단어들이 모두 같은 것을 말하지만 서로의 뉘앙스나 의미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 겉 사람과 속 사람. 겉 사람은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 또는 중생하지 않은 사람을 말하지만 속 사람은 거듭나고 중생하여 새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속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으로 강건해지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 마음을 말한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속 사람은 강건해 진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결국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속 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은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매일 보혈로 더러운 마음을 씻을 때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주신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우리의 속 사람은 계속 강건해져 가야 한다.

 

옛 사람과 새 사람. 옛 사람은 죄악의 유혹을 따라 생활하는 사람이고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사람이다. 속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새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새 사람은 속 사람을 가진 사람의 생활 방식, life style을 말한다.

결국 우리의 신앙 성숙은 우리의 마음이 계속 새롭게 되어서 속 사람이 강건해 지고, 그 결과 죄악의 유혹을 따르는 옛 사람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새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속 사람이 강건해지면 그것은 반드시 새 사람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결국 신앙 성숙은 나의 마음이 새로워지고 나의 속 사람이 강건해 진 만큼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서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적 성숙을 강조한 결과 외적 행동을 경시하기 쉽다. 행위와 봉사 위주의 삶에 지친 신앙인들이 영적 성숙과 신령한 체험을 많이 추구하는데, 이것들이 자칫 잘못하여 나의 내적 성숙과 변화에 그치고 외부로 나타나지 않으면, 불건전한 신비주의, 체험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겉 사람이 강한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옛 사람의 삶을 살고, 속 사람이 강한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새 사람이 삶을 산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매일 마음이 새롭게 되어 속 사람이 강건해져서 새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 성숙 정도의 차이

 

지금까지 필자가 말한 옛 사람과 새 사람, 겉 사람과 속 사람의 전쟁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계속 진행되는 영적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한번 이겼다가 한번 지는 식으로 제자리에 맴도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죄악의 영역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계속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새마음 제자훈련을 통해 속 사람이 계속 강건해져서 새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너무나 귀엽다. 그러나 그 아이가 일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으면 골치라도 보통 골치가 아니다. 그런데 신자들을 보면 신앙 생활을 한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누가 자기 기저귀 갈아주기를 바라고, 여전히 누가 자기가 어질러놓은 뒤 치다꺼리를 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태어났지만 성장하지 않는 신자! 정말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서 유아, 청소년, 어른의 과정을 거치듯이, 신자도 태어나자 말자 한꺼번에 영적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적 유아, 영적 청년, 영적 어른의 과정을 거친다.

 

성경은 이런 영적 성숙의 단계랄까 과정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 믿음이 연약한 자와 믿음이 강한 자(롬 14장).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 사람인데(롬 14:2), 신앙의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 의심이 많다. 한편,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롬 14:2)은 신앙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으로 인해 남을 업신여기고 판단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롬 14:13, 14).

진정 성숙한 신앙인은 남을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여 나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남에게 거칠 것이 되면 삼갈 수 있어야 한다(롬 14:14-16; 고전 8:11-12).

 

• 젖만 먹는 사람과 단단한 음식도 먹는 사람(히 5:12-6: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13절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절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5:12-14).

말씀의 깊이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젖만 먹는 사람과 단단한 음식도 먹는 사람을 구분한다. 젖은 성경에서 영의 양식인 말씀을 의미한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벧전 2:2) 할 때의 ‘젖’은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과 대조되어 사용될 때는 아직도 교리나 지식의 초보 단계에 머무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기본적인 교리나 가르침은 알지만 더 깊은 영적 지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실생활에서 실천이 결여되어 말씀의 능력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실제로 삶 속에 적용함으로써 연단을 받아 체험을 통해 영적 분별력을 가진 자들이다.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해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 어린 아이, 청년 및 아비들(요일 2:13-14).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14).

영적 아이들은 이제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구세주 정도로 하는 사람이다.

영적 청년들은 이 단계를 좀 지나서 악한 자를 이기고 말씀이 속에 거하는 자들, 즉 말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악한 자인 마귀의 유혹이나 공격을 어느 정도 이겨낸 사람들이다.

영적 아비들은 아이들이나 청년의 과정을 거쳐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여러 가지 속성과 삶을 향한 여러 가지 섭리를 체험을 통해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이제 자기 중심의 옛 사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새 사람으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 그치지 않고 영적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성경은 신앙의 성숙도를 여러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다. *

 

 

 

출처 : 새마음영성카페
글쓴이 : 생명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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