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10과 믿음이란 무엇인가?(2)
제10과 믿음이란 무엇인가?(2)
믿음의 내용
우리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범사에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하며 결국에는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첫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 믿음의 지성적인 측면과 유사한 것인데, 믿음의 대상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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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만사가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환란과 고난이 연속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즈음, 마치 하나님을 벤딩 머신이나 요술 방망이 처럼 돈 나와라 뚝딱, 건강 나와라 뚝딱, 성공 나와라 뚝딱 하는 식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자녀의 필요를 들어주신다. 그러나 믿음이란 말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히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 옛 사람들도 이 믿음으로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히 11:-12, 공동 번역).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히
현대인의 성경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히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잠시만 살펴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성경적인 믿음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즉각적인 응답을 바라지만, 노아는 120년 동안 외롭게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목적지도 모른 채 정든 고향을 떠나라는 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은 또한 25년 만에 100세가 되어 얻은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능욕을 애굽의 황태자가 누리는 부귀 영화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있었다.
여호수아는 견고한 성 여리고를 함락시키기 위해 칼과 활을 점검하고 공격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 주위를 일 주일 동안 빙빙 돌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다.
어떤 선지자들은 비록 극심한 고문과 죽음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부활시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왜 이런 믿음의 선진들이나 기도로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린 조지 뮐러 같은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하는가. 그 사람들은 특출한 사람이고 우리는 보통 사람이라서 그런가?
성경에 보면, 기도로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한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사실 나도 신자이자 목회자로서 믿음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라는 노래처럼 믿음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해 왔다.
그러던 중, 믿음 운동 주창자들의 저서도 꽤 많이 보았다. 특히 오순절 계통에서는 “원하는 것을 말하고 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 것이 됩니다”(You name it, you claim it),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라는 식으로 믿음을 강조해왔다.
그래서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잔뜩 나열해 놓고, “주님, 믿습니다. 주실 줄 믿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의 의지하여 구합니다. 주시옵소서”라고 통성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작정기도를 해보았지만 결과가 별로 신통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재판장을 괴롭힌 과부처럼, 떡 덩이를 얻으러 온 친구처럼 끈질기지 않고 강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일까?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10 달러를 심었더니 나중에 정확하게 100배의 결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더 크고 좋은 집을 주셨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을 보니 그 사람들 보다 믿음이 작은가 보다.
나는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해보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성공 철학의 대가인 미국의 나폴레옹 힐의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Think & Grow Rich), [적극적인 사고 방식], [상상하라 그러면 이루어진다]와 같은 성공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이 책들이 말하는 대로 내 목표를 정해 놓고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고 마음 속에 성공한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별로 였다.
“잘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방법은 무엇일까? 왜 끈질기게 구해도 보았고, 강청도 해보았지만 하나님은 내 요구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일까? 내가 구하는 것이 터무니 없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남들이 하는 보편적인 것을 구했는데 왜 응답이 되지 않을까?
내가 나중에 새마음 훈련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구한 것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주님 저에게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저런 것이 필요합니다. 응답해 주시고 문을 열어주시옵소서”라고만 했지, “주님, 저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문의는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으니 나도 남들처럼 물질축복, 건강축복, 은사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내가 원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했지만 정작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나님을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문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 왔던 것이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해가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만 구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응답될 리가 있겠는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하-3).
왜 그렇게 기도했는가? 그렇게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값싼 복음에 현혹되어 왔기 때문이다.
A는 사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목사와 상답을 했더니 십일조 생활을 하느냐 고 물었다. 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한번 해보라고 권면했다. A는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업 되는 것이 워낙 긴급했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십일조를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 당장 좋은 징후가 나타났다. 차일피일 주문을 미루던 사람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왔고 모르던 사람도 소개를 받았다면서 큰 주문을 해왔다. A의 사업은 점점 번창해갔다.
그러자 A는 좀 더 담대(?)해졌다. 십에 일조를 해도 이 정도인데 십에 2조 또는 3조 하면 어떻게 될까? A는 때로는 십에 2조, 때로는 십에 3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최소한 사업이 두세 배는 늘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십일조를 통해 성공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A처럼 마치 하나님과 배팅(놀음)하는 식의 십일조는 곤란하다. 물론 하나님은 자녀의 신앙이 연약할 때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응답을 통해 신앙을 성장시켜 가시지만 허구한 날 그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응답이나 보상이 반드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것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으로 부자 되고, 믿음으로 병이 낫고, 십일조를 통해 금방 재정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신앙의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이라면 재정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십일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돈을 많이 벌면 믿음으로 십의 2조나 3조 또는 그 이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십일조, 내가 원하는 것을 즉각 응답 받는 벤딩 머신 식의 믿음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상당 부분이 믿음으로 약속이 응답되는 체험을 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지만, 후반에는 비록 약속을 손에 쥐지는 못했지만 큰 환란과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 대해 기록한다(히
믿음은 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개인적인 요구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과정에서 믿음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실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그러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필요한 음식이나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번번히 원망하고 불평했다. 비록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기뻐하셨을 리가 없고 오히려 그들의 영혼도 파리해졌다.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 106:14-15).
자기 사업 키우기 위해 십일조를 도구화한 A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결국 자기 욕심으로 인해 멸망해가지 않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서 응답 받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욕심이자 탐욕이다. 상상이나 긍정적인 생각이나 말의 반복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은 실용주의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컷 구해 놓고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 제 기도 안 들어주실거죠’라고 한다고 한다. 왜 그런가? 벼룩도 낯짝이 있지 속에 온갖 죄악과 욕심을 간직한 채 하나님께 간구하니 성령께서 그 사람을 책망하신 것을 본인이 느낀 것이다.
물론 신자는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상상하고 긍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마음이 순수해지고, 마음이 순수해지면 담대한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새마음 훈련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키면 기도의 제목도 정화된다. 더 이상 나의 욕심이나 집착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담대해 지고, 그러다 보니 비록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이미 받은 것과 같은 확신을 갖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이전에 마가복음의 이 말씀을 매일 암송하면서 내가 구하는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보려고 무척 노력해 보았지만 받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고심한 적이 있었다.
“왜 말씀대로 되지 않을까? 왜 내가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어지지 않을까?”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한 것이 아니라 내 욕심과 요구를 구했기 때문이다.
이후 새마음 훈련을 하면서 나는 내가 먼저 무엇을 구하기 전에 기도 제목부터 구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면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하나님이 노(No) 하시면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권하시거나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예스(Yes)를 얻으면, 그때부터 그 기도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강청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도한다. 나는 이것이 제대로 된 믿음, 제대로 된 기도라고 믿는다.
어떻게 믿음을 키울 것인가?
믿음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동사이다.
믿음은 끊임없이 자라고 성장해야 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 .”(살전
믿음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믿음이 자라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말씀, 기도, 예배, 봉사, 전도와 성찬식의 참여 등 믿음의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믿음이 자랄 뿐만 아니라 실족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내가 과거에 이 정도 믿음이 있었으니 잠시 쉬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Y 는 다니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외국에서 몇 개월 동안 연수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기도 중에 Y 형제가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몇몇 성도도 내용에 동의했고 본인도 그렇게 응답을 받았지만, 만일 연수를 가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둬야 한다는 회사의 강경 입장에 못 이겨서 연수를 떠났다.
Y 가 간 지역에는 마음에 맞는 교포 교회조차 없어서 수 개월 동안 Y는 정상적인 예배 참석은 고사하고 빡빡한 연수 일정으로 인해 매일 성경 읽을 시간조차 없었다. 또한 주말에는 불신 동료들과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지 않아야 할 쾌락의 장소에 정기적으로 가곤 했다.
수 개월 후 연수가 끝나고 돌아온 Y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참 은혜를 받으면서 신앙이 성장할 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본인도 하나님이 가로막은 이유를 늦게야 깨달았지만 때는 늦었다. 또한 해외 연수가 그의 진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후 그의 신앙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 동안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본인도 힘들게 지내다가 소문도 없이 다른 교회로 옮겨버렸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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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순종하는 삶을 살수록 믿음이 더해지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수록 죄와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 믿음이 약해진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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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새마음 훈련을 통해 믿음이 자라간다. 새마음 훈련을 통해 죄에 대해 죽은 삶을 지속적으로 살 때, 죄악의 지배를 받는 겉사람이 깨어지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게 되어 믿음이 더해진다.
당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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