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내적치유

[스크랩] 쓴 뿌리

davidtheking 2008. 12. 12. 20:21
 

쓴 뿌리


- 쓴 뿌리는 내면세계로 연결된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경건, 하나님 음성 듣는 법,

하나님 성품 등 이 모든 것이 내면세계를 다루기 위한 준비작업인 것이다.


- 경건이 없이는 우리 내면세계를 치유 받을 수가 없다.


- DTS는 3가지를 목적으로 한다.(겨냥한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


-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변화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증거되어지고 전파되어 지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다. 복음이 전달되어지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여지는 자의 내면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 복음증거의 방법은 다양했다. 기술, 전문적인 것, 구제사역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 메신저라고 하는 복음 메신저의 근본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방법이 달라졌다. 컵이 더러워지면 물이 더러워진다. 틀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되지 않는 틀에 다른 것 아무리 넣어보아야 아무 소용없다.


- 내면세계에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객관화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주관적인 것으로 하면 자기중심이 된다. 성경전체가 가르치는 것은 내면세계를 만지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자기중심의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한다. 정서 감정 안타까움 장애적인 요소들 욕구를 내려 놓아야 하나님의 치유가 가능하다. 기억속에 있는 상처도 내중심적인 것이다. 치유는 게시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 정확한 하나님의 마음과 개념정리만 잘 하면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가면 치유된다. 성경을 읽을 때 또박 또박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역사가 일어난다. 선포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의 내면세계를 빛 가운데 토설하느냐가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진다.


- 벽이 있고 거리감이 있는 것을 깨어나가야 하고 상처를 치유 받겠다는 것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롬12:1-2


롬 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민수기의 놋 뱀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신약을 확실히 잡아 주기위해서 있는 것이 구약이다. 히브리서를 보면 구약이 뚤린다..


- 인간이 얼마나 갈등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아내를 누이로 속이었다.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서 선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마음을 틀로 보아야 한다. 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담겨지는 영역이 다르다. 컵에 많이 부어도 컵 가장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소비되어 버린다. 컵에 금이 갔다면 그마져도 작아진다. 마음의 문제가 있으니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율법주의와 종교주의의 괴리 현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큼 줄려고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판력, 정죄 감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있다 매너리즘이 벽을 만든다. 설교말씀이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이 쉽게 뽑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씀의 메시지를 받지 못할 때는 피가 마른다.


렘 17: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렘 17: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 노아가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보낸다. 우리의 생각이 비둘기 생각과 까마귀생각이 있었다. 까마귀는 고기가 석어서 냄새가 났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비둘기는 풀잎을 물고 돌아왔다.


- 말 한마디로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가 있다. 마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변화의 개념은 무엇인가? 사람이 변화되어야 한다. 변화는 지향적인 것이다. 새로우면서 과거와는 다른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추구하는 것 지향하는 것이다. 벗어난다. 나온다. 새로운 것으로 추구한다는 것이 변화이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 변화이다. 삶의 언저리에 시각적으로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 어떤 상태 일로 인해서 습관 인격 성격으로 굳어졌던 것으로 달라지는 것이 변화이다.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사고체계에 문제가 있다.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하려는데 문제가 있다.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할 때는 말씀으로 기도자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검증을 받아서 객관화한다. 주관적인 것이 성격으로 고정되면 이해의 폭을 그것으로 좁혀준다. 그 테두리로 이해한다. 변화는 대부분 자기중심이다. 환원하는 삶이 변화이다. 하나님이 처음 우리를 만드실 때의 모습으로 환원하는 것이 변화이다. 처음 만드실 때 나를 본다. 존귀하게 본다. 하나님의 성품의 특징은 영광이다. 영광이 하나님의 성품을 집대성한 것이다.


-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습17:18-19 하나님이 나를 향한 사랑 에베소서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신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적전쟁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사탄과의 싸움이 아니다. 내가 건강한 사람인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인가는 사고체계에서 문제에 따라 결정된다. 이 세상에서 타당한 것으로 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의 사랑이 변한다.


- 안경알이 빨가면 세상이 빨갛게 보인다. 그러나 다른 안경으로 보면 아니다. 세상이 빨갛다고 고집하는 주관적인 사고체계가 된다. 관점 세계관은 다르다. 형성된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다. 설교를 같이 들어도 느끼는 것이 다 다르다. 같은 수업을 받아도 1등이 나오고 꼴치가 나온다. 어느 교회에서 선교여행 후 눈 속에서 나타난 예수님으로 보이는 그림 한 장에서 예수님 얼굴이 보이면 구원이고 안보이면 절망으로 생각했다. 중고등부 수련회까지 연결된 사례가 있었다.


- 생각과 사고체계는 우리를 지배한다.

  문화가 우리 생각세계를 뒤집어 놓는다. generation gap 세대차이다.


렘 9: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렘 9: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합리주의가 이 세상에서 지배한다. 이 합리는 하나님을 거절한다. 철학, 이념, 사상이 인간의 합리주의가 지배한다. 서양과 동양의 합리주의가 다르다. 다른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국제법이다. 세일을 하는데 세일을 위한 세일이 한국이다. 미국 백화점에서 옷을 30불 주고 구입했다. 15불로 세일하면 영수증을 제시하면 15불을 환불해준다. 10불로 내려오면 5불을 환불해준다. 색이 안 맞으면 다른 색으로 바꾸어 준다. 이것이 미국의 세일이며 합리주의적 사고이다. 한국은 한 번 구입하면 끝이다. 이와 같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 한국의 동학사상을 주도한 최재우는 인내천개념이다. 손병희가 종교로 바꾼 것이 천리교이다. 난을 일으킨 것이 녹두장군이다. 고생하는 우리 안에 하늘이 있고 신이 있다. 그 사고가 산불처럼 퍼졌다. 인간의 내면세계를 핍박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많은 모든 영화가 뉴에이지이다.


잠 28: 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 인간의 합리에 종노릇하지 말라. 합리적인 것을 근거로 합리적인 체계로 굳어진다. 합리 속에서 생존하려면 모니터한다. 모니터는 정보를 수집한다. 모니터 다음은 리모트컨트롤이다. 그다음은 조종한다. 21세기에서는 능력이라고 한다.


- 생각의 틀이 변화하지 않으면 치유가 되지 않는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죄인이든 어떻든 나의 모습 이전에 만드신 모습으로 보시고 망그러진 나의 모습을 보고 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사고체계가 변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변해야 한다. 이미 형성된 합리주의 사고체계는 굳어진 사고체계이며 여기에 복음주의가 이루어지면 기복신앙이 된다.


- 화해를 위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 런 리차드슨저 peace child Why I 란 책을 읽어볼 것


- 화해를 위해서는 부족 중에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 죽은 시체의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이 죽음이 개념을 화해를 위해서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데 두었다.


- 신앙은 이해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


엡 3: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지식으로 해석되어 질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도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면세계를 보아야 하고 그 내면세계는 인간관계에서 알 수 있다.


(2) 경험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합리주의 다음에 오는 것이 경험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 넌 지금 몰라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이 경험주의이다.


- 부모의 양면성 : 인간부모의 양면성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한다. 부모를 통해서 거짓을 배운다. 질문해 오는 아이들에게는 항상 부모가 자기는 희생하면서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해주었다. 아버지가 약주 한잔 하고 들어오면 피난 때 내려와서 고생하며 자수성가한 것을 삼국지처럼 이야기한다.


- 합리주의를 근거로 한 모든 것이 거짓으로 표명된다.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을 경험한다. 다양한 경험을 한다. 경험주의적인 것을 어떤 경계선을 넘어가지 못한다. 그 테두리를 중심으로 사고를 굳히고 경험한다. 밴츠를 타고 가면 어서 오라고 공손히 인사한다. 티코를 타고 가니 저 멀리 가라고 했다. 우리 안에 다양한 경험이 있다. 좋은 경험은 추억이지만 나쁜 경험은 상처가 된다. 한 사람이 나를 격려해준 말은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이정표가 된다. 합리주의는 자기 경험을 극대화한다.


- 경험주의 다음으로 오는 사고체계는 합리와 경험으로 열매 맺어지는 것이 실용주의 실리주의이다. 결과로 사람을 인정한다. 과정과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능력을 대변한다. 결과는 평가받아오는 기준이 된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것을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조직에서는 인정을 받는다. 어떤 한 형제가 폭력사회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내가 저렇게 되겠구나 해서 나가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그 형제는 죽을 정도의 고통을 당하고 나와서 DTS 훈련을 받고 선교사 준비를 하고 있다. 결과 앞에서 자기가 망가지고 있다. 이런 안타까움에 주님께서 와야 한다.


- 우리의 사고체계는 이러한 것에 물들어 있다. 종일 일하고 저녁에 DTS 훈련을 받으면 얼마나 고생하는가? DTS를 통해 여러분의 사고체계가 변해야 한다. 목사님은 문을 2개 만들어 놓고 목회했다. 폭력을 휘두르는 한 성도가 있었다. 그런 성도는 나가는 문으로 나가도록 했다. 자기 자신이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자는 나가는 문을 택하는 것이다. 들어오는 문 나가는 문을 만들어 놓고 당신들이 예수를 정확히 알면 그런 폭력의 짓은 안한다. 세상문화에 선동적인 것에 그치고 창조적인 것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들은 나가는 문으로 간다. 사고체계가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결과가 오게 된다. 사고체계가 변화되면 들어오는 문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다.


- 예수님이 정말 좋으면 세상에서 하던 짓 들이 유치해 지고 싫어진다.


- 교회 집사님 비데오를 너무 좋아했다. 미국에서 시무하던 교회에 박사가 70명이 있었다. 서울에 소재하는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 이 박사들은 미국에서 술 먹는 것 아니면 골프 치는 것, 비디오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박사면 무엇하고 교수면 무엇 합니까 사고체계가 바뀌지 않았는데 성경의 사고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 성경의 사고체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행한다.

-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는 곳에 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일을 하면 사역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영역에 그런 것이 보충되어 진다.


창 2: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의 교제를 원하신다.


- 우리가 존귀한 것은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고 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교제를 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랑은 인격이다. 생명 속에는 사랑의 개념이 있다. 성경의 육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처 정욕 지식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합리주의로 굳어진 안타까움을 안고 있는 총체적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육체이다. 우리의 형상 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다. 사랑은 원리 원칙이 아니고 인격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자승자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만들었다.


창 2: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다 좋아 했는데 좋지 못한 것을 보았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보고 좋지 않게 보셨다. 에덴동산에 다 짝으로 만들었는데 자기를 닮은 암수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담은 자기혼자였다. 아담은 그것을 하나님께 이야기 하지 않았다. 새를 보고 짐승을 보고 다 보아도 짝이 있는데 자기는 짝이 없어서 고독하고 외로워했다는 것이다.


창 2: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요 17: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내안에는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가 함께 계셔서 온전함을 이루었다.


- 부부란 하나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아무도 들어 올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자식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결국 부부는 처음에는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나이가 들면서 결국 자식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사이에는 항상 자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 부모를 떠나라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어떤 것도 부부관계를 둘로 나눌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부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정이 깨어지고 금이 가는 주된 이유는 부부가 나누어야할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자식에게 빼앗기고 부모님께 빼앗기고 하다보면 부부가 나누어야 할 사랑의 영역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는 하와가 있고 하와 안에는 아담이 있어 하나가 됨으로써 온전하게 되는 것이 성서의 부부의 원리입니다.


- 하나님 다음에 부부이고 부부다음에 가정이고 가정다음에 먹고사는 것이고 목회자는 사역입니다.


창 2: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창 2: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 2: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 3: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 3: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온전한 사람을 깨뜨렸고 내면세계의 부끄러움 무화과나무로 가리 웠다.

수치가 상처의 첫 원인이다.


창 3: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 3: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 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수치 다음은 두려움이 왔다.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뜨리고 죄를 짖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웠지만 가리워지지 않았다.


-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두려움을 몰아낸다.


- 수치의 끝이 교만이다.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가 수치와 두려움을 가지고 와서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 우리의 사고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약 2: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 2: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 욕심이 유혹을 불러들였다.


요일 2: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일 4: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지혜와 용맹과 부함을 중심으로 살아간 사람은 죄인이다.

-. 우리는 궁극적으로 남을 위해 살아간다.

- 내면세계에서는 사단은 문화 역사의 옷을 입고 와서 죄를 짓게 한다.

- 하나님이 옷은 수치를 가리라고 주셨다. 형벌의 특징은 잘못된 사고체계안에서 야기된다.

-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을 낳는다.(롬5장)

-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이 아니다

-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 내 안에 상처가 있다면 사랑받지 못해서 온 상처이다.

- 하나님 가운데 빛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고정된 사고체계로 죄를 짖게 된다.

- 수치 두려움은 간교함을 낳고 간교함으로 바벨탑을 걽는 것이다.

- 내 안에 온 상처는 사랑받지 못해서 온 상처이다.


- 사랑과 능력과 은혜를 하나님께서는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문제이다. 관계를 통해서 교제해서 온전한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 인간의 내면세계를 유린당했느냐가 문제이다.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 영성이란 의미는 얼마만큼 하나님과 교제하느냐 하나님과 기도 생활하느냐에 의존한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끌고 나가신다. 내 생각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의 기도를 하면 능력이 있고 쉽다. 억지로 내 생각대로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기준에 맞추어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알아 가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결의와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관계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요17장 예수님의 갯세 마네동산의 기도에서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갯세 마네 동산에 올라가셨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신분이다.


- 기도의 많은 격식들, 표현 어구는 개인기도에서는 그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시간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데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탄이 엿보고 틈탄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창 3: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 3: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① 수치 :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 수치를 알게 된다.


② 두려움(하나님에 대한), 환경이 가져다 준 두려움, 서로를 향한 원망함 탓함이 있다.


- 에덴동산에 가시와 엉겅키가 없었는데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가득 찼다. 가시와 엉겅키를 갈아 업어야 다른 식물을 재배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아담에게 농사를 짖도록 했다. 죄의 벌로 땀 흘려 수고해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하와에게는 잉태의 고통을 주었다. 이것이 징벌이다.


-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는 동침하지 않았고 추방당한 후에 동침하였다. 그리하여 가인을 낳고 아벨을 낳아 가족이 형성되었다. 가인의 직업은 유산으로 물려받은 농업이었고, 아벨의 직업은 목축업이었다. 농업은 하나님의 징계로 온 것이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므로 징계로 온 것이 아니었다.


- 삼하11장에서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 바를 간음하였다. 그에서 난 자식이 죽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니 솔로몬을 낳고 하나님이 솔로몬을 사랑하셨다.


- 예배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같이 살았으므로 제사나 예배가 필요 없었다. 죄를 범해서 배겨나고 별거함으로써 제사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나올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알려주셨다. 그것이 제사이고 예배이었다. 하나님을 인간을 보고 싶어 하신다. 올 때는 그냥 오지 말라. 너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가렸듯이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무엇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 신앙생활에서 교회법, 우리 법,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에 의해서 굳어진 사고체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교회법보다 말씀의 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교회건축도 주님께 물어보고 해야 한다. 몸 파는 사창가 역 부근의 접대부를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농업과 목축업의 차이는 그 사람의 성격이 그런 유형이라서 직업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고 직업에 의해서 그 사람의 성격이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농사의 특징은 씨 뿌리고, 정기적으로 수고, 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아담이 어려워하며 농사짖는 모습을 가인이 보아왔다. 농사 짖는 것은 외골수 융통성이 없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발달한다. 혼자서 흙과 대화하며 농사 짖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축업은 집을 떠나야 한다. 물과 풀을 따라 다녀야 한다. 목축업은 농업보다 단순하다. 이삭의 아들 애서도 목축업을 했는데 성격이 다혈질이다.


창4:7을 외울 것

창 4: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가인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그것이 죄이다.

우리가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며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로서 몇 년간 신앙생활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이다. 동생 아벨을 죽일 것인가 아닌가는 너가 선택하는 것이다. 가인의 성격이 지금 극한 상황까지 와 있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가인을 찾아왔다.


* 아담 가정의 특징 4가지


① 아담 유형 : 무칙임, 책임전가, 가정을 등한시, 고생하며 농사 짖는 형,

   아브라함도 자기가 살겠다고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사람이다.


② 하와 유형 : 환경에 영향력을 받는 사람,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변명하기 급급한 사람,


③ 가인 유형 : 스스로 고립적이고 독선적인 사람, 아벨의 반대성격


④ 아벨 유형 : 혈기가 많음, 함부로 말하는 사람, 경거망동하는 사람,

   생각보다 행동과 말이 먼저 나가는 사람,


- 아담가의 모든 사람은 성격장애자들이었다. 성격장애자들은 자기가 성격장애자임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육체적인 장애자는 자기가 육체적인 장애인임을 알고 산다. 정신세계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정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모와 자녀를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 하루를 살아도 온전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치료는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영적인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정의 역기능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간의 내면세계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묶임에서 나오고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교회가 화려해진다. 세상의 문화 앞에 발을 굽히고 세상이 교회 안에 다 들어왔다. 이것이 영적인 장애가 오는 주된 원인이다. 즉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라는 사고체계가 교회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 영적장애는 성격장애에서 온다. 세상적인 기준에 맞추어 교만하므로 영적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우리가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할 교회는 많지만 교회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는 별로 없다. 한국의 아버지가 가정을 많이 떠나가 있는 것이 문제이다. 가정이 그저 정보교환의 장소 역할만 하는 현대사회의 사랑이 메마른 가정이 많다. 집안의 고민을 해결 못해주는 아버지, 불안과 긴장의 연속으로 가정이 움직여져 간다.


- 지금부터 기도를 하기 위해서 3가지 질문을 준다.


① 부모님에 대한 질문 : 나에게 어떻게 기억이 남아 있는가? 그림, 사진을 보면서 큰 영향력이 있었는가 없었가를 생각한다. 수치, 두려움이 많은 가정, 상처받은 가정 등등,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는 사실, 권위주의와 맹종의 가정, 불교 유교에 찌든 가정, 이런 가정은 정서적으로 이미 이혼한 가정이다. 남편에 대한 무관심, 아내에 대한 무관심, 자녀에게 다 들어간다. 부모들이 왜 폭행을 했는가? 부모는 자식 때문이라고 한다. 자식은 부모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일제 시대 위안부로 끌려간 한 여인이 하루에 200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하는 밥도 못먹고 주먹밥을 누군가가 넣어주면 먹고 사는 불쌍한 위안부의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② 나는 부모님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 우리나라에도 1년에 200만명 핏덩어리가 유산된다. 세계적으로는 1년에 1억이 넘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불장난으로 내가 태어났는가? 딸이 많아 태어나지 말아야할 것이 태어났다고 푸대접 받는 것은 아닌가?


③ 나는 가정에서 형제와 자매의 관계가 어떠했습니까? : 실례


㉠ 어머님이 감기약 과다 복용으로 눈이 실명 장님이 되어 한양대 전철역에서 물어물어 집을 찾아가며 갈아타는 전철역에서 사람이 몰려오며 밀어서 철로에 떨어져 역무원이 전동차를 급정거시켜 상처만 입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예


㉡ 5-6년 전에 DTS에 입소한 정신장애인이 된 형제의 예 :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로서 술을 먹고 형을 마구 두들겨 패고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폭력을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라난 어느 형제가 형이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내가 없어지면 된다면서 동생에게 농약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농약을 가져다주고 그 농약병을 따고 다 마셔버리고 1시간도 안되어서 발버둥 치다가 몸은 시체로 서서히 식어갔다. 농약을 가져다 준 동생이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었다. 늘 형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리며 자기가 살인자라고 하는 죄책감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11살 된 동생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정신병자가 되었다. DTS 간사가 형과 똑 같이 닮았다. 그래서 간사님만 보면 형이 생각나서 교육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거기서 그만 둘려고 했으나 그 간사님이 형의 역할을 해 주면서 간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네가 나로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살지 마라 애원하는 형을 벌견 하면서 그 고침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동생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11살로 되 돌아 가서 자기가 형을 죽이지 않았다는 간사의 말을 듣고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요 11: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 11: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 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 11: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우리의 상태는 무덤이다. 죽은 나사로가 우리에 해당한다. 밖에는 예수님께서 계신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돌덩이를 옮겨서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가 옮겨야 한다. 죽은지 4일이나 되어 냄새가 납니다. 이것은 사탄의 음성이다. 그 사탄의 음성을 끊어버리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린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사탄의 음성은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권능과 이름으로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주님과 함께
글쓴이 : 생명생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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