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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자가의 능력] / 십자가 목회의 원리

davidtheking 2009. 12. 1. 23:32

 

 

[십자가의 능력]

/ 십자가 목회의 원리

 

 

1. 땅의 본질은 무(공허). 광물단계(창1:2)

 

땅에서 사람이 상대하는 모든 것은 나타난 형상(그림자)이다. 우리 육신(겉 사람)은 오감으로 보이는 형상을 상대하여 마귀의 유혹을 받아 허상(빈 것)만 만든다.(약 3:17; 딤전 4:7) 이러한 허상 속에 마귀의 영이 자리 잡아 거짓이 참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만물 중에서 가장 부패한 것이다(렘 17:9; 딤전 6:5) 그래서 육(나)으로부터는 썩어진 것(쓸모없는 것) 외에는 거둘 것이 없다.(갈 6:8; 전 1:2)

 

이런 것에서 사람을 깨어나게 만드는 것이 말씀과 기도이다. 말씀과 기도 없이는 하늘나라(실상)을 볼 수 없다.(히 1:1) 하늘나라는 사람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주님과 그의 은혜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세상 정보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성령이 증거 하시도록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성경구절은 얼마든지 외울 수 있지만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인도함이 없으며 거짓 영광 거짓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16:13) 또한 성도들도 보이는 현상이나 자기 속에 담겨진 허상(우상)에 속지 않도록 전혀 기도에 힘써야 한다(세상과 육의 십자가: 행 1:14; 갈 6:14)

 

2. 하늘과 땅은 서로 원수(반대) (롬 8:7)

 

하늘의 생명이 땅으로 내려오면 죽음과 멸시를 당한다. 그래서 주님도 세상에서 죽음과 멸시를 당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도 세상 사람에게는 멸시의 대상 밖에 안 되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자는 세상 사람들이 기뻐할 말에 이끌리면 안 된다. 하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전하여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듣는 자들 속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성도들도 세상에서의 자기 체험이나 자기주장을 버리고 전혀 기도에 힘씀으로써 겉 사람을 벗어나 언제든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절대로 세상과 ‘나’를 벗어날 수 없다. 기도 없이 성경을 많이 알고 종교적 체험이 많아지면 교만하여 육만 커져서 마귀의 통로만 될 뿐이다.

 

오늘날 교회가 수난을 당하는 것은 기도 없이 교회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처럼 많이 알지만 마귀의 도구밖에는 되지 않는다. 기도는 땅의 것을 죽이는 행위이다. 눈을 감아서 눈으로 들어오는 안목의 정육을 죽이고 몸의 운동을 멈춤으로써 땅의 것으로 형체를 만들지 않게 한다. 주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음으로써 세상 생각이 사라지게 하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세상의 행동에서 벗어나게 하며, 입으로 죄를 고백하고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삼층 천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땅의 경계를 넘어 삼층 천에 오르게 된다. 우리 주님은 육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기도로써 먼저 죽으셨던 것이다. 말씀을 따라 기도의 고개를 넘지 못하면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다. 오늘날 교회가 대부분 종교 오락장이나 사교장으로 전락한 이유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말씀과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기도의 십자가: 눅 21:34-36)

 

3. 식물은 몸(형체)을 크게 함으로 생명을 이어감

 

나무들은 더 크고 더 높이 자라려고 한다. 계속 크지 않으면 다른 식물에 가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없이 클 수 없고 결국에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 것을 크게 하는데 전념한다. 자식도, 사업도, 재산도, 교회 건물도 크게 하려고 싸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쓰러질 때가 온다. 세상에서는 어떤 사업이나 나라도 망하지 않는 것은 없다.(요일 2:17)

 

목회자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커지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자기를 보인하고 삼층 천의 충만을 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자기 것을 위해서 투자하던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주님의 사업에 투자하도록 인도하여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도록 해야 한다.(마 6:19) 땅의 것은 하늘나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먼저 하늘나라를 채우면 그림자인 땅의 것은 모두 저절로 채워지도록 되어 있다.(재물의 십자가: 마 6:24)

 

4. 동물은 움직임으로 생명을 이어감

 

동물의 특징은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임을 통해서 먹을 것을 얻고 배설하고 새끼를 낳는다. 먹고 싸고 새끼 낳는 것이 동물이 움직이는 이유이다. 그리고 동물은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이려고 한다. 그래야 먹이를 얻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동물이 빠르고 강하게 움직여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범위 즉 본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아무리 강한 쥐라도 고양이한테 잡혀 죽게 되고 아무리 강한 맹수도 사람한테는 잡히도록 되어 있다. 사람도 동물번지에 사는 사람은 움직이는 것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움직이더라도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도 사회에서도 경제나 군대, 스포츠계에서는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1초라도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들과 같은 종류의 직업이나 사업장에서는 앞설는지 모르나 전혀 다른 종류의 상대들을 이기기에는 무익하다. 오늘날 과학이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더 빠르고 더 강한 기계나 도구를 만든다고 하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더 빨리, 더 강하게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해 서로 싸우는 동물세계를 떠나서 말씀과 사고로 땅의 욕망과 승부근성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삼층 천을 향하여 성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거룩’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삼손은 나실인 이었지만 이방 여인 드릴라를 따르다가 짐승처럼 죽었다. 우리 성도는 세상적인 표준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하고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육신의 모양은 다 버려야 할 것이다. 하늘나라는 임재의 나라이므로 운동을 초월하고 빠른 것을 초월한다. 하늘나라는 영원한 충만감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순간적인 승리감이나 쾌감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5. 사람의 문제는 소속감

 

사람의 특징은 소속감이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을 때 인간의 특징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며 하나님의 아담을 가리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셨을 때 또한 사람의 특징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이 형상 즉. 사랑의 형상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사랑을 이룰 수 없다. 사랑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상대 즉 돕는 배필이 꼭 필요하다. 사람은 이웃을 자기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의식(독처)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다. 짐승은 ‘안’이 없지만 사람은 ‘안’에서 만난다. 이 ‘안’을 통해서만 자기(밖)를 벗어 날 수 있다. 마귀는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여 몸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감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게 함으로써 선택의 부담을 준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실은 마귀(죄)에게 종노릇하는 것이다. 마귀는 좋게 보이는 것은 선택하도록 하고 나쁘게 보이는 것은 버리도록 강요함으로써 사람을 자기 부담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에게 감각을 통하여 헛것을 보게 하고 자기 ‘안’에서 이웃을 만나는 것보다 이웃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도록 몰아넣는다. 이점이 바로 인간의 영인 소속감과 마귀의 영으로 오는 자기 부담과 다른 점이다. 사람에게 자기와 이웃을 비교하여 의식할 수 있는 양심이 있다. 이 양심은 자신과 이웃을 비교하여 이웃에 대한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인간의 독특한 의식작용이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고 영적인 생활을 하는데 양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식 속에 이웃에 대하여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벧전 3:21)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1:19)

 

마귀는 자기 부담감(독처)인 사람의 소속감(사랑)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참 사람-참된 소속감을 가진 사람)이 마귀의 후손을 이기게 될 것을 하나님은 예고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사람의 소속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 사람은 소속감이라는 성질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도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교회에서도 각 기관들의 소속감으로 인한 문제가 많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노인들은 노인들끼리 움직인다. 각 기관들은 횡적인 소속감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목회자의 지도력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회의를 통해서 다수결로 움직이므로 인도자들이 도리어 끌려 다닌다.

 

오늘날 목사는 설교나 하고 의식만 주관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교회의 거의 모든 운동력은 소속감으로 묶여진 당회, 직원회 남녀 전도회, 청년회 학생회 등의 행사들로 분산되어 목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말씀의 역사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교회는 ‘마디’에서 벗어나 서로가 끌고 끌려 다니는 현상이 일어난다. 오늘날 교회가 영적인 열매가 없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의 영 즉, 소속감으로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각자 인도자가 주시는 말씀에 복종하고 전혀 기도에 힘씀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교회마다 붙어야 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2)

 

성경에서도 주님과 동행한 자들은 인간적인 소속감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가정단위로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교회와 가정이 상하관계의 ‘마디’로 이어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6)

 

우리는 창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소속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통해 한 몸을 이루어 생명관계로서 참된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6. 마귀는 자기를 높임(교만)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영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즉, 사랑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사람이 ‘안’에서 이웃과 만남으로 자기를 벗어나 서 로 ‘하나’가 되도록 하셨다. 그러나 마귀는 사람에게 육신의 오감을 통해서 들오는 경험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여 (선악과)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바리도록 유혹함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자기에게 좋은 것을 선택하면 좋아질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이웃과 사랑을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선택과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과 이웃과는 관계없는 사람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나’이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 거짓 신인 마귀가 주는 영적인 허상이다. 사람과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진 짐들은 오감으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 즉 신의 접촉점이 없기 때문에 100%본능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몸의 본능으로 감각되는 경험을 인간 자신이 선악으로 갈라냄으로써 동물과는 전혀 다른 ‘나’라는 독특한 영적인 현상을 만들어낸다. ‘나’란 몸의 감각으로 들어온 경험이 선악과로 말미암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갈라지는 영적 분열상태 이다. 좋은 것은 더 추구하도록 몸에 부담을 주고 나쁜 것은 피하도로고 긴장을 주는 마음의 분열 상태이다(약 1:8) ‘나’란 두 개의 반대되는 의식이 대치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은 긴장과 부담을 가지고 무엇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무엇을 피하여 도망쳐야 하는 불안의 연속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사 48:22)

 

땅의 모든 것은 하늘의 그림자(현상)인데 그림자를 가지고 선과 악으로 갈라서 그것으로 분열된 의식을 갖게 되었으니 사람의 마음은 짐승의 감각보다도 더 타락한 것이다. 마귀는 사람을 거짓으로 유혹하여 죽을 때까지 거짓으로 끌고 다니다가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이루지 못한 ‘나’의 욕망으로 잡히게 하고 영원히 ‘암흑(무)’ 가운데서 고민하도록 만든다.

 

지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 운동력이 없고 ‘나’가 묶이고 형체도 없이 울부짖게 되는 것이다. 지옥은 운동력도 형체도 없이 흑암 속에서 ‘나’만 남아서 신음하는 고통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구별하는 의식은 그대로 남아서 무 형체에 대한 고통 즉, 지옥 불을 피하려고 부르짖는다. 사실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곳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나’에 이끌려 마귀를 따라 영원히 흑암에 갇히게 된다.

 

‘나’란 마귀가 준 선악과 뭉치이며 세상에서 ‘무’로 끌려가는 지옥의 길이다. 주님은 천국의 길이라면 ‘나’란 지옥의 길이다. 그래서 주님은 계속 ‘나’를 부인하도록 말씀하신다(마16:24) 세상의 특징은 ‘나’만의 세계이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죽이지만 얻는 것은 없게 된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1-3)

 

우리가 세상과 나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참사랑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만 나를 벗어날 수 있다. ‘안’에서 만나는 사랑만이 나를 벗어나게 한다. 세상 사람들도 ‘나’라는 긴장과 부담,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사랑’을 외치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예수 외의 사람의 사랑은 그 속에 다른 ‘나’ 즉, 다른 지옥이 있기 때문에 잠시 지나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자기 속을 채우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부르는 모든 사랑의 주제는 비극으로 끝난다.

 

그렇다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사람의 고민이 있다. 알면서도 미련을 가지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육이요, 세상이요 죄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아래 두셨다. 위에서 오신 사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에게 오신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해방자요, 친구요, 참 돕는 배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혼자 아무리 애써도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이다 .

 

하나님은 예정하심 안에서 나 위에 권세 자를 세우셨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내가 주님께서 세우신 권세 자(인도자, 부모, 남편) 즉, 머리에게 복종할 때 내 속에서 역사하는 선악과의 의식이 사라져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기 경험이나 자기 생각으로 판단(선악과)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권세 자에 복종함으로써 내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줄을 끓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과 ‘나’를 연결하는 말씀마디에 붙음으로써 주님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주님을 믿으면서도 권세 자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가정과 교회가 계속 깨어져나가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잘 믿지만 말씀으로 주님과 연결된 생명마디에서 떨어져 나감으로 교회와 가정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자들이 예배당에서 부지런히 종교행사를 계속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몸 즉, 가정과 교회를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몸 즉, 가정과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 우리의 몸은 세포들이 모여서 살아간다. 몸을 통한 생명만이 모든 필요한 것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개인이 잘하는 것보다 몸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몸은 주님이 지정하여 세우신 권세 자 밑에서 이루어지도록 섭리되어 있다. 그리고 권세 자는 위로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자기 수하 사람들에게 대속의 사랑을 섬겨야 한다. 그래서야만 참된 사랑의 마디가 연결되는 것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엡 5:22-6:9)

 

교회와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권세 자들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나’만 높이려 하고 아랫사람들을 섬기려 하지 않을 때와 아랫사람들이 나만 내세워 권세 자들에게 대적하고 반역할 때이다. 그 누구도 자기 노력으로 사랑(구원)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대속과 자기 부인을 통하여 구원(사랑)을 이루는 배필(상대)들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 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7. 천사단계

 

천사들은 하늘나라의 일을 하는 사역구조의 원형이다. 하늘나라의 일꾼으로써 우리 성도는 천사들이 일하는 위치와 질서를 보면서 일하는 교회의 원형을 보아야 한다.

 

(1) 천사는 자기 위치를 지킨다(시 103:22)

 

마귀와 천사의 다른 점은 바로 ‘위치’에 있다. 마귀는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요, 천사는 자기 위치를 지키는 일꾼이다.(유 1:6) 우리의 몸도 각 지체의 위치대로 일을 한다. 하나님은 위치대로 교회에 지체들을 두셨다.(고전 12:18) 오늘날 교회와 가정이 혼란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성도들이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데 있다. 가장 중심으로 자기 위치를 이용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위치를 주신 것같이 주님은 각 성도들에게 하늘나라의 일하는 위치를 주셨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도가 받은 복(유익)은 바로 하늘나라의 위치에서 비롯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교회는 오락장도 아니요, 인기를 얻는 자기 전시장도 아니다. 각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하늘나라의 위치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위치가 땅으로 이동된 곳이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성도는 하늘나라의 자기 위치를 지켜 맡은 사역을 곧게 잡아야 한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2) 천사는 질서대로 일한다.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치대로 질서를 지킨다. 성경에 나오는 보좌, 주관, 정사, 권세 등은 전부 천사의 서열을 말한다.(골 1:16)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보시고 찬양하는 천사가 스랍 천사(사6:2).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천사가 그룹 천사(창 3:24, 삼상 4:4).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천사 장 가브리엘이 있고(단8:16, 눅 1:19,26) 이스라엘의 수호천사인 미가엘도 있다.(단 10:13,21,12: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서열대로, 위치대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자기가 높아지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마 20:20-24)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일은 흔히 일어난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갈라지게 된다. 우리 성도는 각자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데 전적으로 힘쓸 것이며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주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

 

(3) 천사는 자기 것이 없다.

 

천사는 ‘나’가 없으므로 자기 것이 없다. 그러나 마귀는 자기 것밖에 모르고 사람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끼리(당) 소속감을 갖는다. 사실 이 세상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내 것’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우리가 자기 것을 위해서 일할 때 하나님 일을 할 수 없고 도리어 경건을 이용하여 자기 유익만 구하게 된다. 종교사업과 하나님의 일을 외양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나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종교 사업을 하면 반드시 이웃을 해치고 문제를 만들어낸다.(살후 3: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자기 것을 버려야 한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자기 것을 버리는 생애였다. 자기의 것을 다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이 버리는 과정이 성화의 과정이요, 이 세상과 나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땅의 것, 자기 것을 버림으로써 하늘나라의 충만과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 것과 자기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부적합한가를 알 수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기 권세나 자가 물질로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나도 유익하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로 모든 것을 바리도록 연단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얻는 능력이 아니라 버릴 수 있는 능력 즉, 죽는 능력이다. 자기 것을 버린 자만 하나님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천사는 하늘의 것을 땅에 전달한다.

 

모든 좋은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다. 하늘의 것을 땅에 전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천사이다. 그러나 마귀는 하늘의 것이 없으므로 땅의 것 즉, 무와 공허 속에 자기의 거짓 허상을 첨가하여 무엇을 주는 것처럼 사람에게 착각(미혹)을 준다. 그러므로 세상 신 마귀를 따라 내가 가진 지혜(마귀의 선악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면 결국은 공하와 허무 밖에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한다. 세상적인 지혜와 도움은 사실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도 빼앗기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요 10:10) 그러므로 주님의 일을 할 때 내 방법이나 내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받아서 전달해야 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0-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군이 위로부터 받은 것 없이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종교 사업이며 세상의 일 밖에는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없이 사람들이 자기 지혜와 노력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쓰레기)만 생긴다. 교회도, 가정도, 직장도 오래 되면 될수록 더욱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땅의 것을 가지고 움직이다 보니 쓰레기가 계속 쌓여가기 때문이다.(갈 6:8) 그러므로 우리는 쓰레기가 아난 것 즉, 새것을 하늘로부터 받아야 한다. 성도는 반드시 하늘의 것을 전달해야 하며 쓰레기 속에 파묻히기 쉬운 교회, 가정, 세상을 새것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5) 천사는 은사대로 일한다.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창조된 피조물이다(히1:7)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대로 일한다. 말씀의 사역을 하는 가브리엘, 능력 천사 미가엘 등 모든 천사들은 각자 맡은 분야대로 일하기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었다. 우리 성도들도 땅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피조 된 피조물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창조된 일꾼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취미나 처지대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 두고 싶으면 그만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일자리에서 일하도록 구원을 얻는 것이다. (요 6:39) 하나님은 하늘의 천사들의 모형을 따라서 땅의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하늘의 일자리는 성령이 역사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피곤한 심령들이 와서 쉬고 가는 쉼터뿐 아니라 누구든지 받은 은사대로 일해야 하는 일터인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

 

성도의 일자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되었다.(엡 2:10) 우리 성도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품, 체험, 성, 환경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하도록 주님 안에서 예정된 것이다. 소질이나 성품은 성령의 은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나 소질이나 성격 자체가 성령의 은사는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선천적인 소질이나 성품을 무시하고 성공할 수 없는 것같이 주님의 일을 하는데도 각자의 은사를 무시하고 성공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선천적으로 주신 소질이나 성격에 관계없이 인간적인 노력으로 능력이나 지혜를 구하는 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은사는 육신의 소질과 성격에 따라 지적, 정적, 의지적인 은사가 있다. 그래서 각 개인의 은사는 그 사람의 소질, 체형, 성에 따라서 다르게 주어진다.(고전 12:4-11)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자신의 성품, 체질을 바로 알고 그에 해당하는 은사를 받아서 그 은사대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같은 반사를 하더라도 지적인 은사 자(지혜, 말씀)는 가르침으로, 정적 은사 자(구제, 위로)는 축복하고 위로함으로, 의지적인 은사 자는(믿음, 능력, 병 고침) 기도와 믿음으로 학생들을 인도해야 한다.

 

이 주어진 은사를 따라 주님의 일에 전심전력하다보면 주님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에게도 온전함이 나타나 모든 은사가 다 힘 있게 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본덕인 소질과 은사 즉, 주 은사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발전이 있다.(딤전 4:14-15) 오늘날 교회에서 보면 어떤 은사 자가 나타나면 모두가 그 사람을 따라 모방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다르게 각각 다른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교회에서 담음 목사의 은사를 따라 교인 전부가 똑같이 따라가는 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목사는 자기 교인들이 각자에 맞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 일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는 회의를 한다든가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일해야 한다.

 

(6) 천사의 3대 사역

 

천사들의 첫째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다. 이사야6장과 계시록 5장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찬양 드리는 천사들의 장면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창제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어린양의 피로써 대속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계 하려는 것이다. 천사와 마찬가지로 땅의 성도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사명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며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더 깊은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성도로 하여금 사람의 말이 아닌 천사의 말로 찬양을 드리고 죄와 믿음을 고백하며 말씀을 받고 대속의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말하게 하시는 것이 방언이다.

 

천사들의 두 번째 사역은 성도를 돕는 일이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의 성도들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단 6:22; 행 12:7-10, 27:23) 우리 성도들이 받은 은혜(은사)를 가지고 이웃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목회이다.

 

천사들의 세 번째 사역은 악한 영들을 물리치는 일이다. 땅의 성도들도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사탄에게 빠져 흑암과 허무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건져낼 수 있는 권세가 있다.(눅 4:18-19) 이상의 천사의 3대 사역이 주님을 통해서 교회에게 주어진 성도들의 3대 사역인 것이다.

 

8. 삼층 천 교회

 

교회의 참 주소는 셋째 하늘(삼층 천)이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보좌 우편에 앉으신 아들 하나님을 통하여 대속의 역사를 수행하신다.(롬8:34) 삼층 천 사역의 본질은 사랑이며 대속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대속의 역사로 교회를 통하여 서로 반대가 되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킨다.(엡 1:10, 2:16)

 

교회는 서로 반대가 되는 하늘과 땅을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된다. 교회를 통하여 땅에 사는 성도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삼층 천이 되고, 교회를 통하여 하늘에 계신 주님이 세상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신다.

 

교회는 만세 전부터 하나님 속에 깊이 감추었던 비밀이 마지막 세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유사 이래로 나타났던 모든 실패를 다 고칠 수 있는 최종적인 해결의 능력이 있다. 아담이 실패하고, 열방들이 실패하고,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세상이 실패한 모든 것을 교회를 통하여 성취하신다.(엡 5:26-27)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의 완성이며 사랑으로 세상을 대속하고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현장이다. 또한 땅에 있는 성도가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채우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5-19)

 

서로 반대가 되는 하늘과 땅을 십자가로 연결시킨 교회는 죽고 사는 역사가 계속됨으로써 통로가 유지된다. 그래서 생명밖에 없는 하늘에서도 죽음을 당하신 어린양의 피가 있으며 땅의 성도는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 계속하여 죽음에 넘겨져야 한다.(고후 4:11-12) 이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야곱의 사닥다리’이며 땅에서 하늘로 오르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말씀도, 기도의 능력도 없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생명이 하늘과 땅에서 역사하는 곳이 교회이다. 십자가만이 복음의 주제요, 자랑해야 할 유일의 보배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자가가 한낱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9. 영적목회의 원리- 항상 암기할 것!

 

(1) 無(무) (무: 창1:2)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존재하는) 분이시고 충만하시다. 그러나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을 채우시기 위해 빈 곳이 필요하셨다. 그곳이 바로 땅인 것이다. 그래서 땅의 본질이 무이다. 이것이 바로 땅이 공허, 흑암, 깊음, 혼돈한 이유이다.

 

(2) 傷(상) (상-나타남: 히 11:3)

 

무(땅)라는 스크린 위에 하늘의 것이 말씀으로 나타난 것이 현상이요, 보이는 것이고 나타난 그림자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말씀으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것은 스크린 위에 나타난 영상처럼 말씀으로 나타난 하늘의 상에 불과하다. 보이기는 하지만 변하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러 넣으셨다. 사람의 몸은 흙인데 기(氣(기)가 들어가 움직이며 다섯 가지 감각으로 물질 환경을 감각한다. 이것이 각(覺(각)이다.

 

(3) 覺(각) (각-생령: 요일 2:15-16)

 

짐승들도 사람과 같이 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몸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인 생리작용이다. 각은 전적으로 땅에 속한 것이며 하늘과는 별개의 것이다. 마귀는 이 각으로 사람을 땅에 속하도록 유혹한다.(요3:6)

 

(4) 感(감) (감: 창 1:26)

 

짐승은 생령으로 끝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그림자(형상)이다. 사람만이 땅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그림자가 비쳐 들어오는 통로이다. 하나님은 사랑(생명나무)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그의 ‘안’에 들어오지만 밖의 것만 보는 자에겐 마귀가 먼저 침입해 온다. 이것이 선악과이다.

 

마귀는 선악과로 사람의 오감을 미혹시켜 각(覺(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경험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여 대치되는 감(感(감)을 만든다. 그래서 긴장하고 눌리고 끌리고 갈라지는 이상형상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나’인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을 사람들은 ‘자유’라고 하지만 자유가 아니라 죄의 종이요, 사망의 법이다.(롬 8:3) 사람들은 (마귀-산악과-나-죄)의 종이 되어 세상에서는 쓰레기 인생이요,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까지 끌려간다.

 

(5) 信(신) (신-믿음: 엡 2:8)

 

(나-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다. 믿음은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찾아오는 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구원)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요 1:12) 사람은 자기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때 ‘나’의 부담에서 벗어난다.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악과에서 오는 감의 세계를 벗어나 생명의 세계, 신령한 영의 세계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롬 5:5; 벧후 4:4)

 

(6) 愛(애) (애-사랑: 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죽음(십자가)을 통하여 하늘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 찾아오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시작이요, 끝이다. 성도가 사랑에 이끌려 ‘나’를 벗어나서 땅의 경계를 넘어 하늘로 들림 받는 것이 성화요, 거룩이다. 그리고 하늘의 위치에서 대속의 사명을 가지고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는 것이 영적 목회이다. 사랑은 믿음의 조건이 되고(갈 5:6) 마음의 눌림을 없애주며(요일 4:18)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고 (고전 13:7) 물질로 이웃을 섬기도록 만든다3.(빌 2:17)

 

 

 

 

출처 : 우림과 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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