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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산안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

davidtheking 2009. 6. 16. 12:10

창세기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동산 안에는 인류 전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두 나무는 지금까지도 인간들의 삶에 영향력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이 두 나무가 주는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이 두 나무는 비그리스도인보다 그리스도인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두 나무의 열매 중 어느 열매를 먹어야 하는 지를 계속해서 선택해야만 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 나라와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의 악한 세대를 나의 삶에서 분리하는 선택으로 귀결됩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는 서로 다른 두 영적인 가계도를 상징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 두 가계도의 역사를 나타내주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잘못 이끌어온 요인들을 포함하여, 전 인류를 오류에 빠뜨리게 한 모든 요인들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이 두 가계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탄이 하와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선악과)를 먹도록 한 이유는 단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서 먹는 것을 금지하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이유는 사탄의 능력이 선악과나무의 뿌리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단지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의 실과(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 “만일 네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 죽음을 가져다준 것은 단지 인간의 불순종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악과의 열매도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성경으로 볼 때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는 율법을 상징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고전15:56 새번역)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죄의 권세가 율법에 있는 이유는 율법을 통해 우리는 선고 악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 그 나무가 어떻게 인간에게 죽음을 주는지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우리의 관심을 생명마무로 상징되는 예수께서 떠난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지식나무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만 머무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율법으로 인해 힘이 세어집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율법으로 인해 악을 알고 선도 알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는 우리를 부패하게 만들고 자신의 의로움만 나타나도록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죽음입니다.

선악과를 맺는 지식나무가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다는 사실은 영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창3:3)

인간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인해 결국은 자기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먹은 후에 나타난 첫 현상은 ‘자기점검’이라는 현상 이었습니다.

이 실과를 먹기 전에 그들은 단지 하나님에게만 집중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게 되자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가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이해의 기준은 바로 선고 악이었습니다.

우리가 생명나무에 관심을 집중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한 관심은 줄어듭니다.

선악과거 가져다주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려면 우리는 단지 생명나무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됩니다.

율법은 우리의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로만 향하게 만듭니다.

이런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율법은 죽음을 가져다주고 저주를 가져다준다.”라고 말했습니다.(고전3:7,9)

지식나무를 율법에 비유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율법이 마치 모세가 준 율법인 것으로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구약성경은 율법이요, 신약성경은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이 또한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약 성경은 기록된 글자(성문화된 법률이라는 뜻임: 역자 주)이고, 신약성경은 영(성령, the Spirit)입니다.

만일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어나갈 때 구약의 율법적인 관점을 갖고 읽는다면, 신약성경도 우리에게는 단지 글자로 기록된 율법의 나열로만 보여 집니다.

하나님과 생명을 주는 관계는 도외시하고, 단지 성경에 쓰여 있는 명령을 지키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생명이 없는 죽은 종교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는데, 그 성령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엡4:21).

성경은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놀라운 선물임은 분명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주님 자신을 대신하거나 주님이 보내신 성령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라고 성경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주님이 주신 성경이 아니라, 성경을 주신 주님입니다.

우리가 만일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법들만을 찾아내어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삶만 산다면 구약의 구례만을 지키려고 애쓰며 살았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성경의 명령에만 묶인다면 우리의 영성은 기록된 문자에 묶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글자를 닮아가지 말고 예수님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람이 맺는 열매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앵무새에게 진리를 말하라고 가르칠 수는 있지만 그 진리대로 행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은 성경까지 인용하며,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탄은 우리가 성경의 글자에만 집중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참 생명 되신 예수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길 원하십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후3:6)

성령에 의지하여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를 증거 해 주고, 그 결과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를 증거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너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나를 증언하고 있다.”(요5:39)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를 예수에게로 인도하여 그 분을 만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주님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없이 성경을 읽으면서 지식나무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입니다.

사탄은 지식나무가 맺는 열매의 외형은 아름답게 보이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로 가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은 생명나무이신 예수로 가장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기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가장하여 행동할 수는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인간의 내면을 진정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속에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의 마음을 발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첫 행위는 빛을 만드시는 행위였습니다.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행위로 빛과 어둠을 갈라놓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재창조 하실 때 인간은 다시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다시 태어날 때, 빛과 어두움을 서로 갈라놓으십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빛과 어둠을 나누신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율법과 은혜가 서로 싸우게 됩니다.

육과 성령이 부딪히게 됩니다.

이러한 싸움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고민입니다.

이 사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싸움들 중에서 가장 큰 싸움입니다.

이 사움은 또한 인간을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진리와 사탄이주는 거짓과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창조의 세 번째 날에는 하나님께서 매우 중요한 영적인 법칙과 물리적인 법칙을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무는 그 종류대로 씨를 맺고 과실을 맺도록 하셨습니다.(창1~11,12)

그 결과 두 나무는 서로 영원히 구별되고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또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한다.(눅6:43~44)

위의 말씀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6:7)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지식나무에서 생명실과를 딸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나무만 바라보면 우리는 지식나무가 가져다주는 죽음이라는 열매를 결단코 먹지 않게 됩니다.

이는 나무는 그 종류에 맞는 열매만을 맺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종종 가계도를 상징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생명의 씨가 인간 예수에게 심겨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죄의 씨앗이 아담과 하와에게 심겨졌습니다.

이렇듯 열매기 맺히기 전에 반드시 씨가 심겨져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그들의 삶에 지식마무의 열매가 맺히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움은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들에게 옮겨갔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로 가득 차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실수를 없애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생명나무의 싹이 움트게 하는 “예수”라는 씨를 심으셨습니다.

그 예수로 인해 인간은 참 생명을 다시 갖게 됩니다.

예수라는 씨는 예언을 통해 성령님이 심으신 영의 씨입니다.

그 어떤 육체도 예수라는 씨를 생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육체가 예수라는 씨를 받아 마음속에 심을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여인인 하와에게서 한 씨가 나와서, 그 씨가 그녀를 속였던 마귀의 머리를 짓밟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15)

출처 : 영혼사랑 갈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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