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19 - 2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말씀=하나님)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워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을 받으라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말씀을 사용하라, 말씀이 나를 통해 사용되도록 하라.
나는 이미 옛 사람을 버렸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의 생각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나에게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야고보서는 그런 말씀이고 편지이다. 말씀에 빨리 반응하라. 예전에는 말씀없이도 문제 없이 살았지만,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난 지금, 말씀없이는 살 수 없다.
왜 아버지가 교회를 만드셨는가. 목사님을 두셨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이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속히 하라. 말씀에 나를 비춰보아라.
잘못된 것 인줄 알고도 가고 있니? 그렇다면 빨리 돌이켜라.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어라. 이것은 아버지가 계획하신 모든 일들이다. 하나님 말씀이 내 것이 되었다면 내 모든 행동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13: 8 -9)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 합당을 행동을 하라. 구원을 얻은 자가 해야 할 첫 번째의 일은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잠언 13: !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우리는 많은 것에서 자유함을 누린다. 그 중에서도 말의 자유함 가운데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반복되는 실수를 끊임없이 또 반복한다.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는 이상 , 이 실수는 끝없이 반복된다. 표현의 자유만 누리고 표현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한다. 목사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도하면서 말하라.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라. 난 네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귀를 막은 적이 있다. 너는 이미 내 사람이 되었으니 내가 말하는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말하라.
(잠언 17 :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잠언 29 : 20)
네가 말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내가 말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하라.
(골로새서 3 :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는 사단의 표적이라서 항상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말씀을 붙들고 모든 언행을 신중히 하라.
우리는 항상 내가 나에게 지게 된다. 나의 성냄이 나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나의 성냄에 잡히지 말라.
또 이것으로 인해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버지 말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평정심을 잃게도 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어떤 이들은 교회의 일에 더 매달리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한 어떤 것들이나 과거 속에서 생겨나서 쌓여있는 이런 것들이 지금 표출되고 정리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도 하나님은 귀를 막으신다.
이것은 분명히 병이다. 죄의 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하는 귀의 병. 아버지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우리가 아버지 말씀을 잘못 듣게 되거나 못듣게 되는 것,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받게 되는 상처들....이것은 해결되어야 한다.
(야고보서 1: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나의 성냄은 아버지와 나 사이에 해결되어야 할 나의 문제이다. 아버지의 의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우리는 이것 때문에 끝내 아버지의 의,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하나님 안에 있더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다. 결국 제자리인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는 장애물,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내가 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모자른 결과를 가져다주게 하는 장애물. 나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라.아버지가 말씀하신다.
“ 너는 나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떤 것이 아직 있니?”
아버지께 고백하라. 이것은 분명 죄이고, 병이다.
아버지는 내가 완전히 승리하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아버지께 해결받아라. 이것이 너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승리이다. 즉각 순종하라. 지금!
(야고보서 1: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내가 도와줄께.”
(로마서 13: 12 -14)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이것이 되었을 때 야고보서 1장 21절 말씀은 내것이 된다.
(베드로전서 2: 1 -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여 지면 말씀보다 인간의 생각이 늘 먼저 앞서간다. 우리가 왜 매일매일 괴로운가. 바로 이것이다. 말씀을 온전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라는 존재는 내 생각이 기준이 되어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나가고 있을 때나 혹은 갑자기 큰 일이 들이 닥쳤을 때에라도 우리는 아버지께 먼저 머리 숙이지 않는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21절을 다시 읽어보자.
이것은 긴급한 메시지이다. 지금 당장해야 한다. 빨리 해라, 빨리!
너무나 간단하다. 빨리 버려라, 빨리!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하다. 조금만 낮아져서 말씀을 붙들고 행하라.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지금 문제는 너의 마음에 있단다, 라고.
“왜 알면서도 머리를 숙이지 못하니? 내가 도와줄께.”
이제 시간 싸움은 그만해라. 이것은 결국 하나님과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네가 싸우는 것이란 걸 모르느냐.
“너는 지금보다 분명히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하는데 계속 같은 자리에 있구나. 이 문제를 해결하면, 네가 그것을 버리면 너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된단다.
“ 아버지, 당신의 능력으로 내 마음안에 있는 이상한 것들, 잡스러운 모든 것들을 없애주세요.”
아버지를 부르라. 아버지가 일하시게 하라.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그런 큰 기적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순간순간 역사하시는, 이런 작은 일에까지 섬세하게 인도해주시는 아버지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속에 덧없이 짧게, 여기에 있다.
“영원한 빛 가운데 거할 네가 그것을 버리지 못하니.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너의 슬픔이 한순간에 기쁨으로 바뀌는 것을 느껴라. 치사하게, 조잡스럽게 잡고 있지 말고. 이제는 그것을 버리고. 눈을 들어 나를 보아라. 너무나 큰 세상, 넓은 세상이 너를 위해 준비되어 있단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뿐 아니라, 이런 작은 일, 내 마음속에 지나간 시간 속의 상처까지도 모두 해결해 주시려는 아버지. 지금도 동일하게 나를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를 부르라.
(로마서 1 : 16 -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베드로전서 1 : 23 - 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결국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다. 아무리 쓰레기 더미같은 곳에 빠져 있더라도 아버지는 너를 찾아내신다. 우리의 죄 또한 아버지로 인해 소멸된다. 아버지는 나를 죄인으로 올무를 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기 위함이다.
말씀 안에서 자유케 되어라. 너를 죄인으로 올무 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너의 모든 죄를 씻어주고 정결하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골로새서 3 : 16 - 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장 16절을 다시 읽어보자.
이런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었을 때 전하라. 그 다음은 아버지가 하신다. 이런 것이 내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형제, 자매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예레미야 15: 16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디모데후서 3: 16 -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아무리 멀리 가고, 괴로움에 빠져 있더라도 결국 돌아올 곳은 아버지 앞이다. 말씀 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다. 에네르기이다. 이것은 살아서 운동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그렇다면 제일 먼저 존재한 것은 말씀이며, 말씀은 하나님이다. 우리가 말씀을 갖고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이것은 선포되어야 하며 이것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요한복음 1 :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사람의 말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말은 순간에는 위로가 되지만 시간이 가면 부담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은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쓰다가 아버지께 다 돌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갖고 갈 수 없다. 아버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도 미리 주셨는데 아버지가 당연히 주시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것은 너무나 가볍다.
기꺼이 아버지의 십자가를 져라. 아버지가 도와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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